이 글은 민주당 양산 재선거 공동선대위원장인 안희정 최고위원이 7일 오후 송인배 후보 지지 기자회견에서 배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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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죄인의 심정으로 양산에서 뛰겠습니다.
- 송인배 후보에게 힘을
!
저는 10월 28일까지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활동할 계획입니다. 이번 재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는 송인배 후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양산은 송인배 후보가 17대 총선과 18대 총선에서 연거푸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신 지역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양산 지역에 재선거가 결정됨에 따라 송인배 후보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으로 선거전을 치러야 할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런 송인배 후보를 돕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도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모셔왔던 비서진을 시간 순으로 분류한다면 송인배 후보는 아마도 3기 비서실 팀이 될 것입니다.
1기는 13대 초선의원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부산 동구의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보좌하던 비서실일 것입니다. 이호철씨나 이광재씨가
주축이 되었지요.
2기 팀은 지방자치 실무연구소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하게 되었던 서갑원, 정윤재, 황이수, 안희정...
등이 될 것이고요.
1998년 종로 재선거에서 당선되고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퇴임까지의 비서 팀을 3기로 분류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이때 백원우, 여택수, 문용욱, 송인배 씨 등이 합류하게 됩니다.
이 뒤에 다시 2001년부터 2002년 대선 후보가 될 때까지의 금강 캠프팀이 있고 이어서 대통령 선거 대책본부와
2003년 인수위와 청와대 비서실 그리고 2007년 봉하마을 팀으로 이어지는 노무현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연표가 가능할 듯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각종 부산 선거 때 마다 수많은 지역 운동가들이 노무현 후보를 도왔습니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이런 활동에 동참해왔던 송인배 후보는 98년 종로 재선거 때 부산 지역 활동가들의 추천으로 재선거 운동 팀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거가 끝난 후, 국회의원 보좌진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덩치와 목소리가 육중해 그냥 바라만 봐도 무게가 느껴지던 송인배 후보였습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모셨던 모든
비서들처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 깊은 충성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참 비서들이 늘 겪는 과정대로 송인배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수행 일이 워낙 고된
일이어서 붙박이로 어떤 한 사람이 전담하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수행은 비서실 신참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수행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산 학생운동 출신의 송인배 후보가 수행 일을 맡게 된 것은 그의 성실하고 꼼꼼한 성품과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한 신임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행의 역할을 대단히 중시하셨습니다. 보통의 정치인들이 폼을 잡기위해 또는 의전이란 이름의 잡동사니
현장 업무 보조를 위해 수행 비서를 둡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현장 업무를 기억하고 재처리해주는 보조기억장치로서의 수행 업무를
원하셨습니다. 움직이는 비서실인 셈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근 직을 하는 비서들과 현장을 수행하는 수행 비서 간의 긴밀한 팀워크가 요구되었습니다. 수행비서가
현장에서 자기 마음대로 또는 즉석에서 지시받고 일을 처리해버리면 결국 본부 비서실은 아무런 창조적 기획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송인배 후보는
현장에서 모시는 분의 주문을 신속히 처리해야 함은 물론 이를 비서실의 조직적 업무로 전환시켜주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정보 전달 창구의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해냈습니다.
운전기사 빽이 제일 세다며 농을 하던 여느 청와대 비서실처럼, 지근거리에서 모신다는 것 그 자체가 언제나 권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사고가 터지고 누군가를 모시려 했던 조직이 내분을 겪고 싸우게 되는 제일 큰 원인이 되곤 합니다. 박정희 저격 사건도
이런 청와대 비서실의 암투의 결과였지요... 그러나 지근거리 그 자체가 권력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것은 모두가 다
송인배 후보의 인품과 정치적 역량이었습니다.
송인배 후보는 그렇게 훌륭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모셨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완수해냈습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해양수산부 장관 보좌관으로, 대선 캠프의 수행비서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10여 년 간 노무현 대통령을 모셨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서거 이후, 양산 재선거가 결정되었습니다. 연거푸 두 번을 낙선하면서 정치인의 길을 접고만 싶었던
그가 다시 세 번째의 도전을 결정하게 된 것은 단순히 그의 뜻 만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 서거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가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8년 1월, 참평포럼 전국 운영위원들은 청와대에 초청돼 다과를 했습니다. 그 다과회는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님이 그동안 자신을 위해 고생했던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기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다과회는 시종일관 무거웠습니다. 열린우리당의 해산... 무기력한 우리들... 암담한 미래... 퇴임하는 대통령...
이 모든 것들이 다과회장의 분위기를 억누르고 있을 때 한 시간 가까이 예정에 없이 길게 말씀을 하셨던 노무현 대통령. 우리 모두의 처진 어깨,
가라앉은 마음에 불을 지폈던 그 분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 분은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고개 들어라! 힘껏 박수치고 소리 질러라! ... 그래서 살아남아라!”
노무현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셨던 저희들이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가장 큰 죄인입니다. 10월 28일까지 속죄하는
마음으로 양산에서 뛰겠습니다.
2009년 10월 7일
민주당 최고위원, 양산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안 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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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9일)부터 부재자투표 신청 접수가
시작됩니다
부재자 투표는 원하는 사람 누구나참여할 수
있습니다.
양산의 경우,
40대 이하 인구가 70%인데 이 연령층의 투표율은 30%
수준입니다.
50대 이상 인구가 30%인데 이 연령층의 투표율은 70%
수준입니다.
평일 투표가 부담스러운직장인들은 부재자투표로
참여해주십시오.
민주당 양산 재선거 선거대책위원회